독백

talk2myself 2024. 7. 28. 13:08

나는 비가 싫었다. 특히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싫어했다.

 

어릴적 반지하에 살았던 시절에 장마철만 되면 집에 물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배수 시설도 좋지 않았으니 특히 심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물을 수건으로 훔쳐서 짜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단지 비가 내리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중학교 가는 길은 아직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이었다. 연밭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더 빨랐기에 비만 오면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의 신발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우산을 들어도 세찬 비바람과 조심성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지 아랫부분은 젖기 일쑤였고 우산을 들고 만원버스에 타는 것 역시 고역이었다.

지금 난 더 이상 물이 넘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되는 것, 출근길 만원버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난 비가 좋아졌다. 한여름에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밤에 내리는 비는 이제는 더 이상 집에 물이 들어올까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훌륭한 자장가 소리가 된다. 거실의 큰 창문을 통해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내게 큰 삶의 위로를 준다.

 

40년 전에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던 비, 30년 전에 내 운동화를 온통 더렵혔던 비는 변한게 없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비는 수천, 수만년을 하던대로 할 뿐이다. 그러나 똑같은 비를 대하는 나는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상황이 변했고 비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변했다.

 

지난 날 나는 반지하 방으로 들어오는 비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반지하 방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어야 함이 옳다. 불행이 내게 닥쳤을 때 내게 온 불행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 불행에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즉,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에 우리는 어떻게든 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비를 원망한 것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도 난 내가 아닌 ‘비’에게 현실의 책임을 묻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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