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추석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된 이후, 그리고 가정을 꾸린 지금이 다르다. 초등학교 때야 많지는 않지만 친척들을 만나서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차멀미가 심했던 나로서는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고역이었지만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친척들과의 만남은 뜸해지고 우리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뭐 그래도 어릴적 추억도 좋았지만 조용히 보내는 명절도 나쁘지 않았다. 가정을 꾸린 후의 명절은 꽤 괜찮았다. 어릴 적에 느끼던 시끌시끌함도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좋았다. 작년까지는 말이다.  올해 내가 느끼는 명절은 복잡하다. 말과 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특히 이번 추석은 마음이 참으로 힘들다. 올해 추석은 조용히..

독백 2024.09.14

젊어지고 싶으세요?

10대들과 잠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다시 젊어지고 싶으세요?” “응, 아니, 음...잘 모르겠어.” 나는 몇 번을 대답을 번복하다가 결국 확실한 답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 ‘응’은 당연히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젊어지고 싶은 건 모두가 바라는 거잖아. 젊어지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니야?’두 번째 ‘아니’는 앞에 했던 내 대답의 부정이었다. 젊어지고 싶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왜’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때 난 쉽게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진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예전 젊은 시절의 내가 지금 시대에 살아가는 것은 조금 생각을 해 볼 문제이다. 솔직히 말하면..

독백 2024.09.02

나는 비가 싫었다. 특히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싫어했다. 어릴적 반지하에 살았던 시절에 장마철만 되면 집에 물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배수 시설도 좋지 않았으니 특히 심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물을 수건으로 훔쳐서 짜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단지 비가 내리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중학교 가는 길은 아직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이었다. 연밭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더 빨랐기에 비만 오면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의 신발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우산을 들어도 세찬 비바람과 조심성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지 아랫부분은 젖기 일쑤였고 우산을 들고 만원버스에 ..

독백 2024.07.28

장래 희망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이 질문이 고등학생들이 미래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단순화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는 한 고등학생의 글을 읽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이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에 잠깐이나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그러한 반성은 다시 이제는 누구도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이미 나는 ‘물리적으로는’ 다 컸으니 커서 무엇이 되겠냐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묻는 사람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제 전체 인생의 반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나머지 반 혹은 최소 3분의1 이상이 남아 있..

독백 2024.07.18

취미

어릴 때부터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독서라고 했다. 진짜 취미가 독서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마땅히 내세울만한 취미가 없었다. 중학교때 잠시 추리소설에 빠진 적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취미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없었다. 대학생 때는 굳이 꼽자면 당구와 전자오락이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컴퓨터 게임이었지만 이를 남에게 얘기하기는 스스로도 창피하고 내 수준을 깎아내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장 무난하고 안해도 티가 안나는 독서라고 나와 주위를 속였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내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억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어느새 방 두 면을 가득 채웠다. 여전히 난 내 취미가 독서라고 ..

독백 2024.07.07

추억

추억은 아름답게 미화되지만 대개 삶에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지난 시절을 떠 올리는 것은 잠깐의 즐거움을 주고 하물며 힘들고 고생했던 시간조차도 추억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보람되고 좋은 삶의 경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추억은 현재 내 삶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정체하게 만들며 나의 변화를 방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추억에 묶여 있으면 변화하지 못하고 도태된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같이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은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과거에 묶여 있다. 그리고 달려가고 있는 그들을 변했다고 비난한다. 과거의 추억은 좋은 영화 한편 보는 느낌으로 남아야 한다. ..

독백 20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