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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가 싫었다. 특히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싫어했다. 어릴적 반지하에 살았던 시절에 장마철만 되면 집에 물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배수 시설도 좋지 않았으니 특히 심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물을 수건으로 훔쳐서 짜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단지 비가 내리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중학교 가는 길은 아직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이었다. 연밭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더 빨랐기에 비만 오면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의 신발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우산을 들어도 세찬 비바람과 조심성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지 아랫부분은 젖기 일쑤였고 우산을 들고 만원버스에 ..

독백 2024.07.28

계획대로 된 것은 거의 없다.

삶이라는 것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내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더라도 그리고 그 순간 순간은 계획처럼 흘러간다고 느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된다. - 계획대로 된 것은 거의 없다.그러나 계획대로 된 것이 없다고 해도 아무런 계획 없이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면 20대의 내가 그랬었다. 인생의 가장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앞으로의 삶에 중요한 시작점에 있었던 20대를 나는 무의미하게 흘려버렸다. 그래서 그 대가를 30대에 톡톡히 치러야 했다.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는 나의 의도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너무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당신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동들은 당신이 계획하고 의도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독백 2024.07.24

공부는 재능 or 노력?

공부는 재능이다. 미술, 음악, 체육이 재능이 중요한 것처럼 공부도 재능이 중요하다. 그런데 공부는 노력이기도 하다. 노력하지 않고 공부를 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간혹 별다른 노력없이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공부는 재능과 노력 중 뭐가 더 중요한가?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공부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을 생각해 보자. 미술에서 재능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꿈이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는 것이라면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지 꿈이 대학진학의 수단이거나 취미 생활이라면 노력만으로 충분히 일정 수준 이상을 이뤄낼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평생 학업과 연구에 힘쓰는 직업을..

독백 2024.07.22

윤회

불교에는 윤회라는 개념이 있다. 삶이 죽음 이후에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나의 삶은 이전 삶의 결과이고, 내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다음의 삶을 결정한다는 개념이다. 즉, 지난 생의 업이 다음 생에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이전 삶에서 꽤 괜찮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다음 생에는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난 불교신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러한 개념은 꽤 흥미롭다. 이전 삶에 쌓은 선행으로 내가 지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지금의 삶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 나의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선행을 많이 쌓는다면 지금이 아니라도 다음에는 좀 더 나을 삶을 살 수 있다..

독백 2024.07.20

장래 희망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이 질문이 고등학생들이 미래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단순화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는 한 고등학생의 글을 읽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이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에 잠깐이나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그러한 반성은 다시 이제는 누구도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이미 나는 ‘물리적으로는’ 다 컸으니 커서 무엇이 되겠냐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묻는 사람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제 전체 인생의 반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나머지 반 혹은 최소 3분의1 이상이 남아 있..

독백 2024.07.18

일탈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당신의 하루는 얼마나 다양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는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면 생각이 나는 몇 가지 사소한 사건들은 있었겠지만 사실 어제와 비교해보면 별다른 일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일을 하는 주중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거의 매일을 우리는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듯이 보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비슷한 일들로 채워져 있으면 우리가 보낸 5일은 하루와 별 차이 없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면 1년의 경험은 1달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년을 마치 1달처럼 느끼게 된다.의미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때..

독백 2024.07.16

아이와의 관계

아이들은 자라면서 활동 영역을 점차 넓힌다. 부모의 품안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서 얻기에 부모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이때는 갈등이 적다. 아이가 점차 크고 활동 반경이 커지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에게 100%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서 부모의 품을 점차 벗어나게 되고 자신의 주장이 생겨난다.  여기서부터 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말을 잘 듣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말에 ‘아니야’, ‘싫어’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니 부아가 치민다. 반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는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다.  해결 방법은 당연히 부모가 양보해야 한다. 아이가 달라졌으니 부모가 이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독백 2024.07.14

삶이 힘들 때

16년 전, 건강상의 이유로 30대 초반인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주변에서 돈을 빌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고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적자를 면하기 시작했다. 더 힘을 내야 할 때 문제가 터졌다. 가족 중 한명이 내가 직장 다닐 때 내 이름으로 받았던 대출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나는 그 대출로 인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체까지 넘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나는 그냥 내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내가 믿었던 사람들은 왜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사람과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다가오는 지하철을 보면서 생각했다. ‘딱 용기를..

독백 2024.07.11

늙어가는 것은...

누구나 젊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입버릇처럼 ‘젊음이 좋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젊음을 원한다기 보다는 하지 못했던 일, 실패한 일 등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섞여 있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젊음을 그리워했었다. 20대의 활기차고 건강한 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예전만큼 힘도 없고 피부는 탄력을 잃고 흰머리도 많아졌지만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난 정신적으로 더 성숙했고 그때보다 지식과 지혜도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남아 있는 50대가 나는 기대된다. 지금보다 더욱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정서적으로 아직 미성숙했던 20대에 비추어볼 때 지금..

독백 2024.07.10

취미

어릴 때부터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독서라고 했다. 진짜 취미가 독서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마땅히 내세울만한 취미가 없었다. 중학교때 잠시 추리소설에 빠진 적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취미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없었다. 대학생 때는 굳이 꼽자면 당구와 전자오락이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컴퓨터 게임이었지만 이를 남에게 얘기하기는 스스로도 창피하고 내 수준을 깎아내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장 무난하고 안해도 티가 안나는 독서라고 나와 주위를 속였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내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억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어느새 방 두 면을 가득 채웠다. 여전히 난 내 취미가 독서라고 ..

독백 2024.07.07